[코인인류학] 조선시대 화폐정책이 실패한 이유
[코인인류학] 조선시대 화폐정책이 실패한 이유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 gina_lee@naver.com
  • 2018.06.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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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진아 환경·생명저술가는 1992년 경실련 환경개발센터의 창립멤버이자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고, 1994년에는 아시아 시민단체인 ‘동아시아 대기행동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던 환경운동 1세대 출신이다. 서울대 독문학과 졸, 동대 인류학과(석박사) 를 나왔으며, 현재 인류사와 건강, 환경 문제에 대한 포괄적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이진아의 코인인류학'에선 암호화폐에 그만의 인류학적 시선을 가미해 코인의 역사를 풀어가보고자 한다.


인간이 가장 먼저 사용했던 돈은 어떤 것이었을까?

20세기의 역사가들은 아주 오래 전엔 물물교환을 하다가 경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소금, 조개껍질, 곡식 등 가치가 있고 구하기 어려운 물품들이 돈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동전이 나타나고, 지폐가 나타나고, 수표가 생겼다고 말이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역사의 디테일을 좀 더 들여다보면 맞지 않는 부분도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돈의 역사를 보자. 

한반도에서 화폐가 사용됐다는 증거가 나온 것은 기원전 2세기 경 옥저(편집자 주: 지금의 함경남도 해안지대에서 두만강 유역일대에 걸쳐 존재했던 고대의 종족)에까지 소급된다. 밝혀진 자료로 보아 그렇다는 얘기고,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는 화폐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후 삼국시대에도 통일신라시대에도 화폐가 사용됐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유명한 해동통보가 나오던 12세기엔 7종 이상의 동전과 철전, 그리고 더 고가품의 거래를 위한 은병(銀甁)이 거래 매체로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오면서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돈 대신 포목과 쌀을 거래에 사용했다. 돈을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다. 태종 1년인 1401년에는 저화(楮貨)라는 지폐를 발행했으며 세종 대에는 동전을 발행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정부는 건국 초부터 지폐나 주화, 즉 요즘 경제학에서 말하는 ‘명목화폐’를 유통시키려고 상당히 노력했다. 그런데 실패한 것이다. (조선에서 화폐가 통용되기 시작한 건 저화가 발행된 지 250년 이상 지난 1658년부터였다.)

『태종실록』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굶주려도 먹을 수 없고 추워도 입을 수 없는 한 조각의 검은 자루에 불과한 것,” 이게 당시 저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고려시대에 그렇게 화폐를 잘 활용하며 화려한 무역을 펼쳤던 한반도 사람들인데, 왜 조선시대에 들어서자 갑자기 원시인으로 돌아간 것처럼 구닥다리 생각을 갖게 됐을까?

살다가 의문이 생길 때 역사적으로 유명한 천재들의 연구에서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근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본 19세기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칼 마르크스. 그의 유명한 개념 중에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서 사람이 어떻게 먹고사느냐에 따라 사고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주로 먹고사는 방식,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주 생산양식’이 크게 달랐다. 고려 때는 해상교역로를 통한 무역활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무대로 해서 뛰는 개경의 거상(巨商)들이 중앙정부를 먹여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북쪽 국경을 굳건히 닫고 동‧서‧남쪽으로는 거의 배를 띠우지 않고, 한반도에서 나는 것만 소비하고 살았다. 그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마을을 단위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몇 개 마을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장’이 설 때나 자기 마을에서 잘 나지 않은 것을 구입하면서 살았다. 

왜 똑같은 사람들인데, 나라가 달라졌다고 해서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까? 이 점은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려‧조선 시대 기후변화와 화폐 사용의 관련성
고려‧조선 시대 기후변화와 화폐 사용의 관련성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기온이 치솟기 시작하던 1200년대부터 명목화폐가 활발히 쓰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개경의 무역상인들이 주로 정치자금을 댔던 고려조는 무너지고, 조선이 들어선다. 기후가 최저점을 쳐서 정말 먹고 살기 힘들었을 시기에 임진왜란이 있었고, 이후 다시 온난화로 가면서 사람들의 교역활동이 활발해지며, 상평통보 같은 화폐도 사용되기 시작한다.

사실 이건 아주 당연한 변화다. 전통사회에서는 나무로 배를 만들었고, 목재가 풍부한 산지에서 자연하천을 따라 쉽게 바다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항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기후가 따뜻해지면 삼림도 풍부해지지만, 동시에 하천의 수량도 많아져 수심이 깊어지면서 항해하기 좋은 조건을 형성한다.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졸저 『지구 위에서 본 우리 역사』를 참고할 것)

인간은 참으로 영리한 전략가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 많은 생물학자들이 모든 생물의 궁극적 목표는 “일단 자기 자신이 성공적으로 생존해가고, 그 위에 자손을 되도록 많이 나아 자손도 성공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 즉 대대손손 최대한 효율적으로 유전자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다른 생물종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서 복잡하게 선택해간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사람들이 지폐인 저화나 동전인 주화, 즉 요즘 경제학에서 말하는 ‘명목화폐’를 선택하지 않고 굳이 부피와 무게로 더 불편할 수 있는 실물화폐를 선택한 데는 그만한 계산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계산이었을까?

앞서 말한 대로, 일단 별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바다 건너 남의 나라와 교역할 일이 별로 없었고, 함경도 쪽은 방비가 든든했다. 한반도 안에서만, 그것도 일반 백성들은 주로 한 고을 안에서만 필요한 물품을 조달했는데, 굳이 복잡하게 화폐까지 발행하지 않아도 포목이나 쌀로 충분히 거래가 가능했다.

기록을 보면 그보다 깊은 사정이 드러난다. 2대 태종도 4대 세종도, 모두 저화나 주화 같은 명목화폐를 발행해서 유통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반강제로 저화를 쓰게 해도, 사람들이 쓰지 않으니까 자꾸 화폐가치가 하락했다. 세종 때는 구리 동전의 가치가 얼마나 하락했는지, 동전을 녹여 그릇을 만들어 쓰는 사람도 있었다. 세종이 고민 끝에 일벌백계로 그런 사람을 극형에 처하기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런데도 동전도, 이후 나온 철전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시도해본 저화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왜 정부는 그렇게까지 명목화폐를 유통시키려고 애를 쓰고, 왜 국민들은 한사코 그걸 피했을까? 실록을 보면 태종이 저화를 발권한 의도는 가치의 흐름을 정부가 장악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제 벌어지는 경제활동 상황까지 장악할 수는 없었다. 시장경제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화폐를 발행해서 쓰게 하면, 상인들은 손해 보지 않으려고 물건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 그러다보면 물가가 오르고,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점점 줄어든다. 사람들은 당연히 화폐사용을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쌀과 포목을 이용해서 거래하는 관행이 충분히 안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말하면, 자칫 지폐나 동전 같은 명목화폐는 별로 필요가 없는 것이어서 변화가 생길 이유도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것 같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바뀌면 사람들이 돈을 사용하는 전략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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