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인류학] 총, 균, 쇠 그리고 화폐
[코인인류학] 총, 균, 쇠 그리고 화폐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 gina_lee@naver.com
  • 2018.06.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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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미국 UCLA 교수이자 환경지리학자 재레드 다이아먼드(Jared Mason Diamond)가 쓴 것으로, 영어 제목은 'Guns, Germs, and Steel'이다. 듣기만 해도 임팩트 있어 보이는 이 책은 실제로 1998년 퓰리처상과 어벤티스상을 수상했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미국 국립지리학회가 제작한 다큐 시리즈가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 책의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지금의 유럽, 그리고 유럽에서 파생된 국가인 미국‧호주 등이 잘 나가는 이유는 선천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환경에서 오는 기회와 필요성으로 빚어진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특성이란 무기와 철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지리적 요인으로 강화된 면역력이다. 

필자의 생각엔, 책 제목을 '균‧총‧쇠'로 했다면 더 적합했을 것 같다. 근대기 유럽이 세계의 강자가 되는 과정에서 제일 큰 영향을 미쳤던 요인은 유럽인이 신대륙에 퍼뜨린 세균이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일원이었던 유럽인은 오랜 옛날부터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흑사병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에 감염되어 고생했다. 하지만 그만큼 면역력도 형성돼있었다. 반면 태평양과 대서양에 둘러싸여 고립된 채로 오래 살아왔던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지역 원주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콜럼버스의 뒤를 이어 대서양을 건너게 된 유럽인이 신대륙에 왔다가 가기만 해도, 그로부터 1세기 사이에 인구가 80~95%까지 줄었다.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마치 신이 분노해서 신대륙 원주민만 골라가며 벌을 내리기라도 하듯,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서운 병으로 사람들이 픽픽 쓰러뜨려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졸저 '환경지식의 재발견', '지구 위에서 본 인류사' 참조.)

때는 소빙하기라 지구상 어느 사회에서나 농작물 생산량이 저하되어 식량난에 시달릴 때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들어 지친 상황에서 그렇게 원주민만 골라 걸리는 병이 돌게 되면 정신적으로 사기가 저하돼서라도 정복자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소빙하기란 13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후반까지 지구를 덮쳤던 기후변화 한랭주기를 말한다. 지구 전체적으로 연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2도 정도 낮았는데, 이 정도면 서울에선 겨울 내내 한강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가 된다.)

다시 기후변화 그래프를 보자.

 

지구 전체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면 화폐가 활발하게 사용되고, 기온이 내려가면 화폐 사용이 미미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프에 나타나지 않은 기원전 시대에도 비슷했다. 당연한 일이다. 전 회차에서 얘기했듯이, 기후변화 온난주기에서는 사람들이 바다를 이용해서 원거리 교역을 많이 한다. 이런 경우 쌀이나 포목 같은 걸 일일이 싣고 다니면서 거래하기 불편하다. 따라서 거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 믿을 수 있는 교환의 매체, 즉 화폐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온이 뚝 떨어졌던 소빙하기에는 이전시대보다 화폐 사용이 둔화돼야 마땅하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걸 지난 회차에서도 보았다.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 이전보다는 화폐 사용이 훨씬 둔화됐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유럽에서는 소빙하기 후반부터 은행이 나타나고 지폐가 생기며, 전신으로 송금하는 기술까지 개발된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화폐의 기능에 대해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꼽히는 것은 '가치의 교환 기능'이다. 쌀 한 가마니가 20만원이라면, 20만원을 주면 언제든지 쌀 한 가마니와 바꿀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원래 돈이라는 것은 이렇게 물품이나 서비스의 교환가치를 표시해서 만든 '교환의 매개'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돈은 물건보다 대체로 가볍고 다루기 좋기 때문에 또 다른 기능이 파생된다. 바로 '가치의 저장' 기능이다. 예를 들어 혼기가 찬 딸이 있어서 혼수를 장만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조선시대에는 딸과 함께 보낼 물건을 만들어서 차곡차곡 쌓아뒀다. 요즘처럼 생활필수품을 일일이 만들 필요가 없고, 또 유행이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돈을 차곡차곡 저축해두면 된다. 결혼 날짜가 잡히면 그때부터 쇼핑몰에 나가서 일괄 사들이면 되니까. 물건을 저장해두는 것보다 그에 해당되는 가치를 갖는 돈을 저장해두는 게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다.

근대의 유럽인에게도 그런 목적으로 화폐가 아주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신대륙에서 금, 은 등 귀금속뿐 아니라 설탕‧면화‧커피‧담배‧카카오 등 잘 상하지 않아서 원거리 교역에 적합한 작물들을 거의 원가를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었다. 1차산업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땅과 노동력은 균과 총 덕분에 공짜로 확보된 셈이다. 그렇게 확보된 농산물, 광산물은 유럽과 식민지에서 가공해서 세계시장에 팔았다.

어마어마한 부가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전 어느 시기에도 볼 수 없었던 지구적 규모의 부의 불균등 분배가 발생했고, '사자의 몫(lion's share)', 즉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일 큰 부분은 유럽의 것이었다. 많은 가치를 아주 가볍고 다루기 쉬운 미디어에 담는 형식인 지폐와, 튼튼한 화폐 저장 시설 및 복잡한 계산을 하는 노하우가 있어서 그 가치의 저장과 유통을 전담하게 된 전문기관인 은행이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 아주 당연한 귀결이다. 전신이 발달하고 그 후예로 인터넷이 탄생하면서부터는 아예 돈이라는 물리적 존재도 패싱해서, 추상적인 가치만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우리는 현재 그렇게 해서 형성된 화폐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

 

필자 이진아 환경·생명저술가는 1992년 경실련 환경개발센터의 창립멤버이자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고, 1994년에는 아시아 시민단체인 ‘동아시아 대기행동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던 환경운동 1세대 출신이다. 서울대 독문학과 졸, 동대 인류학과(석박사) 를 나왔으며, 현재 인류사와 건강, 환경 문제에 대한 포괄적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이진아의 코인인류학'에선 암호화폐에 그만의 인류학적 시선을 가미해 코인의 역사를 풀어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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