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인류학] 익명성, 그 양날의 검
[코인인류학] 익명성, 그 양날의 검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 gina_lee@naver.com
  • 2018.06.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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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리비아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알렉산더 대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왕자였을 때, 북 아프리카를 방문해 어느 작은 부족 마을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때 마을 농부 두 사람이 족장을 찾아왔다.

“오, 위대하신 아버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소서.”

두 농부는 친구 사이였다. 한 사람이 먼 곳을 여행해야 할 일이 생겨 그동안 자기네 밭을 돌봐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었다고 한다. 부탁을 받은 친구는 밭을 갈다가 금화가 가득 든 항아리를 발견했다. 그는 밭주인이 돌아오자 그 항아리를 넘겨주었다. 밭주인은 발견한 사람이 임자라고 주장하고, 금화 항아리를 발견한 친구는 그 항아리가 나온 밭의 임자가 그 항아리의 임자라고 주장했다. 서로 실랑이를 하다가 족장에게 결정을 내려달라고 온 것이다. 

족장은 그 금화를 똑같이 나누어 가지라고 권했고, 두 농부는 현명한 판결이라고 소리 높여 감사를 바치면서 물러갔다. 그걸 지켜보던 알렉산더 왕자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 웃느냐고 묻는 족장에게 왕자는 대답을 한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누군가가 남의 밭을 갈다가 황금 항아리를 발견하면, 밤에 몰래 그 집을 습격해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항아리를 차지한 후, 밭을 샅샅이 뒤져서 항아리가 더 있는지 찾아볼 겁니다.”

족장은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귀공의 나라에도 태양이 비치오?”

“네, 그렇습니다.”

“그 나라에도 비가 내리오?”

“네.”

“그 나라에도 풀과 나무가 자라오?”

“네.”

“…”

족장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다시 물었다.

“혹시 귀공의 나라에 사람 말고 다른 동물들도 있소?”

“네, 소도 있고 양도 있고, 동물들이 많지요.”

족장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하나님이 귀공의 나라에도 태양과 비와 식물을 주시는 것은 틀림없이 그 동물 때문이로군.”

 

이 이야기가 주로 인용되던 맥락에서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정복왕으로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알렉산더 대왕의 그 엄청난 정복욕은 그렇게 비인간적인 사회풍토에서 자라난 거라고. 그에 비하면 소박하게 살아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는 사회가 정말 가치 있는 사회라고.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금화’라는 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차이에 집중해보면, 또 지난 회차들에서 했듯이 기후변화 및 지리적 요건의 차이를 함께 고려해보면 더 재미있는 분석이 나올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살았던 기원전 4세기 후반은 급속히 기온이 낮아졌던 한랭기의 최저점을 향해가던 시기로, 베수비오스 화산, 에트나 화산 등 큰 규모의 화산폭발이 줄을 이었던 때였다. 발칸반도 안에서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난립해서 델로스 동맹, 스파르타 동맹 등으로 이합집산하면서 서로 칼을 겨누는 ‘고전 그리스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나마 비옥한 땅을 갖고 있는 편이던 마케도니아에는 난민의 행렬이 줄을 이었을 것이고,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약탈은 일상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그에 비해 기후가 온난한 지중해 남쪽 연안에 자리 잡은 리비아의 사정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한랭기가 시작되자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서로 싸우며 경쟁적으로 남쪽으로 진출하면서 리비아도 당시 그리스 식민지가 돼있었다. 하지만 그리스 지배계급은 주로 큰 도시에 머물렀고, 지방수준에서는 각 고을별로 하나의 친족집단을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안정된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상반된 사회 분위기를 갖는 지역에서 금화와 같은, 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전혀 다른 건 너무 당연하다. 그 차이를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환금성'과 '익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를 비롯한 지중해 북부 연안 지역은 당시 전쟁 빈발지역으로, 식량만큼 중요한 게 무기였을 테고 이질적인 인간집단이 서로 부딪치는 장이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그런 재화의 가치를 대신해줄 수 있는 공통의 가치 매개체가 중요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매개체(화폐)가 특정인 손에 들어갔는지 하는 건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잘 모르는 사람끼리의 교환이고, 금만 확실하다면 그만이지 상대방의 도덕성까지 따질 여유는 없었을 테니. 이런 사회에서 금화 한 항아리란 엄청난 삶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리비아의 한 시골 친족집단 내에서라면 그런 장거리 교역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누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두 소상히 알고 있는 분위기였을 테다. 어쩌다 손에 넣게 된 금화 한 항아리가 자칫 분쟁과 우환을 불러올 수 있는 골칫덩어리로 간주됐다 해도 이해가 간다.

익명성, 화폐경제에 있어서 이런 속성은 양날의 칼이다. 익명성은 다른 사람들의 불순한 의도로부터, 돈의 주인 혹은 그 부모들의 근면성의 산물인 가치를 저장하고 지켜주는 효과를 갖는다. 한편 돈을 둘러싸고 무슨 짓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른다면, 사람들은 때로 꽤 대담하게 이기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단위로 자급자족적이었던 중세를 벗어나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근대로 들어가면서 환금성과 익명성의 경제 시스템은 더욱 확고해졌다. 특히 이 시스템 구축의 선구자였던 유럽인들에게 그런 경제 시스템이 환영받을 만한 것이었을 테다. 대서양을 건너며 목숨을 걸고 미지의 땅에 뛰어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 식민지에서, 그리고 고향에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식량, 생필품을 넘어 권력, 명예, 결혼에 자손까지 말이다. 그러려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돈을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돈을 버는 과정에 있어서 도덕성까지 염두에 둘 필요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칸트나 헤겔이 명료하게 정리한 변증법적 역사관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상황에 대단히 적합했던 특성이 상황이 변하면서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화폐경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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